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히틀러 암살 미수사건 (문단 편집) === 만약 히틀러 암살에 성공했다면? === '''쿠데타가 실패한 가장 큰 원인은 히틀러를 암살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또한 암살을 성공했다면 쿠데타가 실패하더라도 히틀러가 이리저리 꼬여놓아 막장이 된 독일군 지휘체계만큼은 일시적으로 마비되면, 이 틈을 타서 히틀러가 그렇게 꺼리던 협상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보면 '''히틀러 암살에 성공했더라도 쿠데타가 성공했을 가능성은 매우 낮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 이유는 [[발키리 작전]]이 실행될 때 임무를 수행하는 부대인 그로스 [[도이칠란트]](Großdeutschland), 즉 대독일 사단 소속 수도경비대대의 특성에 있다. 그로스도이칠란트 사단은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부터 '''군사반란 발발시 즉시 진압에 투입할 정예 수도 방위 부대'''를 모체로 한 베를린 경비연대를 기반으로 창설된 정예 부대였다. 진압 부대가 역으로 반란 모의에 적극 동참할 확률은 지극히 낮았다. 게다가 그로스 도이칠란트 사단은 육군 최정예 부대로 주력 부대는 막대한 전과를 올리면서 동부전선 곳곳에서 맹활약 중이었고, 쿠데타 측이 동원할 수 있었던 베를린 내 주둔군은 고작 '''4개 [[중대(군대)|중대]]''' 뿐이었다. 그렇다면 부대를 직접 통솔하게 될, 그 4개 중대 내의 중간급 간부들을 포섭해야 했는데 그 많은 수의 간부들을 포섭하는 것은 쿠데타 사전 발각의 위험이 너무 컸다. 결국 쿠데타측은 [[SS]]가 히틀러를 암살하고 군사반란을 시작했다는 거짓 정보를 발표하고 그로스도이칠란트 사단의 간부급 장교들을 쿠데타에 포섭하지 않고 그들 스스로 발키리 작전을 따라 부대를 통솔해 작전을 계시한다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하지만 히틀러의 생존과 [[SS]]의 연락이 닿으면서 그로스도이칠란드 사단은 이것이 쿠데타였음을 인지하고 이 작전은 실패하게 된다. 또한, [[알베르트 슈페어]]의 자서전에 따르면[* 정확히는 [[괴벨스]]가 한 말을 자서전에 작성한 것이다.] [[나치당]]내의 주요인사들을 체포하거나, 정보교환을 차단하거나, 극단적인 경우 살해하는 등 이러한 행동으로 쿠데타 성공 확률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행동들은 '''거의 행해지지 않았다고 한다.''' 예를 들어 쿠데타 당시 괴벨스는 슈페어와 같이 있었고, 이들의 무장은 그들이 각자 소유하던 권총뿐이었다. 1개 [[소대]]도 아니고 1개 [[분대]]만이라도 이들을 해하려 시도했다면 이들은 결코 무사할 수 없었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또한, 방송국을 점령해서 독일 전역에 유언비어를 퍼트려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만들 수 있었으나, 이들은 위와 같은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대해 쿠데타 계획을 세웠으면서도 자신들의 집권 방법은 도덕적이어야 하고 나치에 대한 단죄는 합법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신념 아래 나치 고관을 암살하지 않고 그냥 체포해서 후에 법정에 세운다는 아마추어적인 생각 때문에 이렇게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쳤다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으며, 쿠데타 계획을 세운 군인들이 전쟁을 잘 알 뿐 정치적인 공작에는 서툴렀고 그로스도이칠란트 사단의 특성을 고려해서 반히틀러 쿠데타라는 점을 숨긴 채로 일을 진행하려고 했다는 쪽이 사실에 가깝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이 계획에서 군부를 대표한 루트비히 베크에 대해서, [[하인츠 구데리안|구데리안]]은 자기 회고록에서 쿠데타에 가담하라고 권유가 있었으나 주모자가 루트비히 베크인 것을 알고 그렇게 결단력 없는 인물이 성공할리 없다고 생각해서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한다. 물론, 구데리안이 주모자가 베크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가담했을지는 미지수이다. 다만 [[쿠데타]]는 비밀리에 진행되어야 한다는 특성상 '완벽한 계획'을 만드는 것 자체가 대단히 어렵다. 실제로 역사상 성공한 쿠데타들도 계획 자체는 허술하기 짝이 없었지만 진압을 해야 하는 정권 측의 실수가 겹치거나 뜻하지 않은 행운을 통해 성공한 사례가 많다. 무엇보다 쿠데타 계획이 허술했다 하더라도 쿠데타 측의 반히틀러 저항 정신을 폄하해서는 안된다. 계획이 허술했건 아니건 이들은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내걸고 한 것이다. 당시 쿠데타 측의 계획은 히틀러와 괴링, [[파울 요제프 괴벨스]], [[하인리히 힘러]], [[마르틴 보어만]] 등을 비롯한 나치당 수뇌부를 제거하고 [[독일 제국]] 시절과 같은 군주국을 세운 뒤 연합국과 강화하고 그들과 함께 소련에 맞설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미 독일의 패망이 한 발자국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연합군 수뇌부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게다가 설령 그들이 히틀러 암살에 성공하고 주요 인사들을 제거한다 치더라도 힘러의 경우 테러가 일어났을 땐 저 혼자서 멀리 떨어진 채 [[슈츠슈타펠|SS]] 호위 병력의 경호를 받으면서 무장 열차 안에 있었고 힘러가 쿠데타 진압을 명령한 뒤 자신이 독일의 총통이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진압에 실패한다 하더라도 외국으로 망명할 수 있는 조건까지 충분히 갖추어진 상태였다.] [[파울 하우서]]와 [[요제프 디트리히]] 등 [[슈츠슈타펠|SS]] 소속 장성들은 힘러를 싫어하며 오로지 히틀러에게 충성하였으나 이들도 쿠데타 측을 그냥 보고 있었을 리도 만무. 결국 대다수의 역사학자들이 지적한 데로 쿠데타 측과 SS의 충돌로 [[내전]]이 벌어졌을 것이고 전선이 붕괴되어 연합국이 12월 [[크리스마스]] 전에 [[베를린]]에 입성하는 꼴로 끝났을 것이다. 진짜 많이 잘해서 쿠데타 측이 힘러까지도 제압하고 SS의 진압도 물리친 후 신정부를 세웠다고 치자. 이미 독일 내부의 혼란으로 전선의 붕괴는 더 빠르게 이루어졌을 테고 신정부가 협상을 시도할 즈음엔 연합군은 이미 [[지크프리트 선|지크프리트]]와 [[동프로이센]]까지 밀려오고 있었을 것이고 강화는 결렬, 신정부 측은 좋든 싫든 계속 전쟁을 해야만 하는 처지가 된다. 전선 붕괴 없이 방어전에 어찌어찌 성공하고 점령지 대부분에서 철수한다는 조건으로 [[윈스턴 처칠|처칠]], [[FDR|루스벨트]]와 강화했다고 치더라도 독일 혼자만의 여력으로 [[소련군]]을 막기는 힘들 것이 확실. 게다가 병사들의 사기도 쭉쭉 내려가고 국민들의 신뢰도 내려간 마당에 소련군에 쳐발리는 신정부에 불만을 품은 세력에 의해 제2, 제3의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법도 없다. 즉, 쿠데타 측이 암살과 신정부 수립에 성공했어도 독일의 패망은 정부만 바뀌었을 뿐 이루어졌을 일이고 더욱이 이들은 '''[[배후중상설|총통을 죽이고 나라를 망하게 한 매국노들]]'''로 후대에 전해졌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렇게 되면 철저한 나치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고 다시 한 번 배후중상설이 돌며 독일이 또다시 군국주의화되었을 수도 있다. 설령 민주화가 됐더라도 현재 [[일본]]마냥 과거사 문제로 [[일본의 우경화|유럽 주변국과의 관계가 매우 시끄러웠을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